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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째 네덜란드 법정에서 장기전… ‘황금 유물’은 누구 것?

최고관리자 0 1009 2022.03.05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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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전쟁터가 아닌 법정, 그것도 두 나라에서 수천km 떨어진 네덜란드 법원에서. 양국이 그 소유권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은 ‘스키타이 황금 유물’. 소송이 ‘발발’한 지 이미 8년이나 됐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전으로 치닫고 있다.

◇슬라브족 공동 조상 ‘스키타이’

스키타이족(Scythian)은 2700여 년 전 우크라이나와 크름반도에서 살던 기마·유목민족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흑해 북쪽 돈강에서 프루트강에 이르는 초원 지대를 스키티아(Skythia)라 부르고, 그 초원에서 살던 페르시아계 민족을 스키트인이라고 했다. 스키타이는 여기서 비롯했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스키타이족은 약 3000년 전 시베리아 한가운데인 알타이산맥 근처에서 처음 발생했다”며 “이들은 날렵하게 말을 타고 강력한 활을 쏘면서 동쪽으로는 중국 만리장성 근처까지, 서쪽으로는 우크라이나 초원까지 퍼져 나갔다”고 했다.

스키타이족은 러시아·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슬라브족의 공동 조상으로 여겨져왔다. 오늘날 슬라브족 거주 지역에 살았던 민족 가운데 역사에 기록된 최초 민족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스키티아를 답사하고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헤로도투스는 ‘역사’에서, 스키타이를 왕후 스키타이, 유목 스키타이, 농민 스키타이, 농경 스키타이 등 네 집단으로 구분했다. 역사가들은 왕후 스키타이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던 유목·농민·농경 스키타이 부족들을 지배하는 느슨한 방식의 제국을 이룩했다고 보고 있다.

스키타이인들은 기마민족 특유의 기동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전투력을 보유했다. 페르시아 제국 다리우스 황제의 군대도 스키타이 기마 부대에 격퇴당했다. 패전 후 귀국한 다리우스가 “스키타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쪽에 있는 것 같아 공격하면 이미 사라졌고, 저쪽에 있는 것 같아 공격하면 거기서도 이미 사라졌다”고 탄식했을 정도다. 스키타이족은 교역을 통해서 부를 누렸다. 흑해 연안 그리스 식민 도시들과 우랄산맥 넘어 알타이 지방까지 진출하는 동방 원거리 교역 활동이 활발했다.

스키타이족은 풍부한 문화유산도 남겼다. 미술 공예가 특히 발달했다. 호랑이·독수리·사슴 등 동물 모티프를 귀금속에 정교하게 새겨 넣은 목걸이·빗·펜던트·칼집·투구·활집 등 장신구와 무기가 대량 발굴됐다.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은 ‘실크로드 사전’에서 스키타이 미술 공예의 특징은 금이 대표적인 귀금속 다량 사용이라 설명하고 “금은 영구 불멸할 뿐만 아니라, 암흑과 불안을 몰아내는 광명과 상통한다고 하여, 권력과 재력의 상징이자 목적으로 삼아왔다”며 “유목민들에게 금은 가장 편리하고 안전한 재화였다”고 했다.



◇ “황금 유물 다음엔 크름 반도 돌려받을 것”

스키타이 문명의 상징이 된 황금 유물은 우리나라에서도 1991년과 2011년 두 차례 전시됐다. 1991년에는 러시아(당시 소련)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유물이, 2011년에는 우크라이나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역사박물관 소장 유물이 들어와 전시됐다. 2011년 서울에서 전시된 황금 유물들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크름: 황금과 흑해의 비밀(Crimea: Gold and the Secrets of Black Sea)’ 순회전의 일환으로 네덜란드로 다시 건너갔다. 스키타이 황금 문화와 러시아 역사의 원류가 우크라이나임을 세계에 알리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2014년 순회전을 끝낸 암스테르담의 ‘알라르드 피르손 박물관’은 고민에 빠졌다. 2014년 3월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점령하고 크름공화국을 세웠기 때문이다. 전시에 나온 유물 432점 중 19점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있는 국립역사박물관이 대여해준 것이라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나머지 413점은 크름반도에 있는 네 박물관에서 대여했기 때문에 누구에게 돌려줘야 하는지가 논란이 됐다. 크름공화국 박물관들은 자신들 소유라며 반환을 요구했고, 이에 우크라이나가 반발하면서 법적 대리전이 펼쳐졌다.

암스테르담 1심 법원은 2016년 “크름 박물관들에 속했던 유물은 우크라이나 문화유산의 일부”라며 “우크라이나 측에 반환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네덜란드를 포함한 서방은 러시아의 크름 병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러시아 측이 반발하며 항소했다. 항소심에서는 한때 러시아가 이길 뻔하기도 했지만, 네덜란드 재판관이 과거 러시아 대기업 법률가로 일한 경력이 문제가 돼 중립성 논란이 불거진 끝에 교체됐다. 결국 지난해 10월 네덜란드 항소 법원은 스키타이 유물이 우크라이나 측에 반환돼야 한다는 1심 판결을 재확인했다.

우크라이나는 환호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위터에 “우리는 항상 우리 것을 돌려받는다”며 “먼저 스키타이 황금을 돌려받고 다음에는 크름반도를 돌려받겠다”는 글을 남겼다.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명백한 도둑질”이라며 크름공화국 정부 수장 세르게이 악쇼노프에게 유물을 돌려받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러시아 측은 지난 1월 네덜란드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러시아 고고학자 발렌티나 모르빈체바는 ‘크름: 황금과 흑해의 비밀’전을 기획한 인물이다. 그는 1990년대 말 크름반도에 있던 기원전 2세기 스키타이 귀족 공동묘지 유적에서 중국 한나라에서 만든 목재 옻칠 상자를 발굴했다. 옻칠 유물이 서방에서 발굴된 건 처음이었다. 이 귀한 유물을 복원·보존할 돈이 없어 자기 집 냉장고에 처박아 두었던 모르빈체바는 자금 마련을 위해 순회전을 기획했다. 그는 지난달 4일 독일 공영방송 DW 인터뷰에서 “모든 게 내 잘못 같다”며 “양국 간 분쟁이 끝날 때까지, 무기한 세계 순회 전시가 해결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고 했다. 강인욱 교수는 “유물이 망가질 위험이 크다”며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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