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美의원 280명에 “비행금지 구역 설정” 호소... 美는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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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리 영토를 비행 금지 구역으로 설정해 달라”고 수차례 요청하면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난감해하고 있다. 비행 금지 구역 설정은 특정 지역에서 인도적 목적을 제외한 모든 비행을 금지하는 것을 뜻한다. 미국이나 나토가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하면, 우크라이나 군사 시설과 주요 도시를 폭격하는 러시아 군용기의 비행을 직접 저지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러시아군과 직접 교전도 각오해야만 하는 선택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5일 오전(현지 시각) 미 연방 상·하원 의원 280여 명으로 구성된 초당파 그룹과 화상 통화에서 석유 수입 금지 등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와 함께 “우크라이나 상공에 대한 비행 금지 구역 설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이날 폴란드 국경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을 만나 “나토가 하루빨리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해 달라”며 “이 조치가 늦어질수록 그 대가는 우크라이나 국민이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비행 금지 구역 설정은 이를 선포하는 쪽에서 “전투 지역의 제공권을 장악하겠다”는 선언이다. 공격이나 정찰을 시도하는 적국의 모든 군용기를 격추하겠다는 의미로, 사실상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진다. 러시아에 비해 압도적인 공군력을 보유한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 상공을 비행 금지 구역으로 설정하면, 러시아 공군은 사실상 발이 묶여 우크라이나 영토 내 러시아군에 대한 지원 폭격이 불가능해진다.
미국과 동맹국은 지난 1990년 걸프전과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3년 이라크 전쟁 등에서 이 지역들에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하고 상대국 군용기 수백 대를 격추했다. 당시 파괴된 전투기와 폭격기 대부분이 러시아제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5일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하는 국가들은 이번 전쟁에 참전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 정부와 나토는 비행 금지 구역 선포에 대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유럽을 순방 중인 블링컨 국무장관은 지난 4일 브뤼셀 기자회견에서 “비행 금지 구역을 실제 시행하는 유일한 방법은 나토 전투기를 우크라이나 영공에 보내 러시아 항공기를 격추하는 것인데, 이는 유럽에서 전면전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면서도 직접 파병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핵보유 강대국 간 전쟁은 핵무기 사용의 위험을 내포하며, 이는 자칫 국제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군을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과 참모들은 바이든 행정부에 같은 요청을 집요하게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군의 무차별적 폭격에 의한 민간인 희생과 인도주의적 위기를 강조하며, 미국과 나토가 군사적으로 개입할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선 긋기’에도 미국인 상당수는 비행 금지 구역 등 강경 대처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이터통신이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와 공동으로 지난 3~4일 미국 성인 831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미국과 나토가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74%에 달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