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중일 갈등…"대만 개입" 다카이치에 日내부 비판도
中, '말 폭탄' 이어 방일 자제 권고로 실력행사 돌입
日, 맞대응은 자제 분위기…여론 악화 속 악순환 우려
지난달 21일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개입' 시사 발언 이후 중일 갈등이 심상치 않다.
갈등을 촉발한 다카이치 총리의 지난 7일 발언 후 1주일 넘게 흘렀지만, 갈등이 수그러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발언 취소를 요구하며 '말 폭탄'으로 공격하던 중국은 15일 자국민에 일본 방문 자제를 권고, 사실상 실력행사에도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중 최다 인원이 중국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방문 자제 권고는 실질적으로 일본에 경제적 압력이 된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일본 내부에서도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이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판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질문한 야당 의원도 놀라게 한 다카이치 "대만 유사시 존립위기 사태" 발언
문제의 발언은 지난 7일 중의원(하원) 예산위원회에서 제1야당 입헌민주당 오카다 가쓰야 의원이 "(다카이치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중국이 대만을 해상 봉쇄할 경우 존립위기 사태가 될 수 있다고 발언했다"며 대만 유사(有事·전쟁이나 재해 등 긴급상황이 벌어지는 것)시에 대한 과거 발언을 따져 묻는 과정에서 나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해상 봉쇄를 풀기 위해 미군이 오면 이를 막기 위해 (중국이) 무언가 무력을 행사하는 사태도 가정할 수 있다"며 "전함을 사용해 무력행사를 수반한다면 존립위기 사태가 될 수 있는 경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존립위기 사태는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을 뜻한다. 집단적 자위권은 자국이 공격받지 않더라도 동맹국 등 밀접한 관계의 나라가 공격받으면 공동으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중국이 무력을 사용해 대만을 점령하려 하고 미군이 끼어들면 중국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적 기지 공격 능력(반격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 현직 총리가 대만 유사시를 존립위기 사태라고 공식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지난해 2월 대만 유사시가 존립위기 사태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질문에 "정보를 종합해 판단해야 하므로 일률적으로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답했다. 이런 모호한 답이 그동안 역대 총리에게서 이어져 온 '정답'이었다.
처음 질문을 한 야당에서조차 다카이치 총리의 답변에 놀랐다는 반응이 나왔다.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이튿날 취재진에 "매우 놀랐다"며 "국내외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카이치 총리 발언이 외교 경험이 미숙한 데서 나온 단순한 실수인지, 자국 내 보수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림수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평소 소신이 반영된 발언임은 분명해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작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때에도 "대만 유사가 일본 유사임은 틀림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정치인으로 저녁 자리를 가지며 인맥을 넓히기보다는 숙소에서 혼자 책이나 서류를 읽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으며 고집이 센 성격으로 평가돼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자민당 총재 취임 이튿날인 10월 5일부터 한 달 이상 한 번도 외식하지 않았다고 요미우리신문은 15일 보도했다.
◇ 갈수록 공세 수위 높인 중국 말 폭탄…"불장난하면 불에 타 죽을 것"
대만 문제를 외교 관계에서 핵심 이익으로 보는 중국으로서는 방관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쉐젠(薛劍)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였다.
그는 지난 9일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에서 "'대만 유사는 일본 유사'는 일본의 일부 머리 나쁜 정치인이 선택하려는 죽음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또 "들이민 더러운 목을 벨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위협성 글도 올렸다가 지웠다.
이에 일본 정부 대변인인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지난 10일 "재외 공관장으로서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중국 측에 강하게 항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는 같은 날 쉐 총영사의 글이 '개인적' 언급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오히려 일본을 강하게 비난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외교관의 개인적인 글이 겨냥한 것은 대만을 중국 영토에서 분열시키려는 망상과 대만해협 무력 개입을 고취하는 잘못되고 위험한 발언"이라고 밝혔다.
특히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에 대해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해온 정치적 약속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것으로, 그 성질과 영향이 극도로 나쁘다"며 "중국은 이에 강한 불만과 단호한 반대를 표하고, 이미 일본에 엄정한 교섭(외교 경로를 통한 항의)과 강한 항의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는 문제를 촉발한 발언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고 같은 날 국회 답변 과정에서 말했다.
그러자 린젠 대변인은 지난 13일 브리핑에서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해서는 안 된다. 불장난을 하는 자는 스스로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더 센 발언을 했다.
쑨웨이둥 부부장(차관)은 같은 날 밤 가나스기 겐지 주중 일본대사를 초치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가나스기 대사가 다카이치 총리의 국회 답변 취지와 일본 정부 입장을 재차 설명하고 명확하게 반론했다"며 "어쨌든 대만을 둘러싼 문제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는 게 우리나라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은 자국 대사에 대한 중국의 초치에 대항해 체면치레를 하려는 듯 하루 뒤인 14일 오후 주일 중국대사를 초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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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 中, 말 폭탄 넘어 실력행사 단계로…日, 거친 맞대응은 억제
결국 중국은 말 폭탄에 그치지 않고 자국민의 일본 방문 자제까지 권고하기 시작했다.
15일 주일 중국 대사관은 공식 위챗 계정을 통해 "중국 외교부와 주일 중국대사관·영사관은 가까운 시일에 일본을 방문하는 것을 엄중히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방문 자제 권고는 실질적으로 일본에 경제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실력 행사로도 읽힌다.
실제 올해 들어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중 중국인 비율은 21.5%로 최다였다.
방일 중국인이 올해 3분기에 숙박이나 쇼핑 등 일본에서 소비한 금액만 5천901억엔(약 5조5천억원)으로 전체 외국인 소비의 28%에 달한 것으로 일본 정부는 추정하고 있다.
일본 교도통신은 중국 정부의 일본 방문 자제 권고에 대해 "관광업에 대한 타격을 노린 조치로 보인다"며 "방문 자제 분위기가 퍼지면 방일객 수요에 찬물을 끼얹게 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중국이 일본에 실력 행사를 할 다른 수단도 적지 않다.
2023년 8월 일본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해양 방류 이후 금지된 일본산 수산물의 중국 수입이 2년여 만인 이달 초순 재개되기 시작했지만 중국 측이 사업자에 대한 수출 허가 지연 등 '속도 조절'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과거 중국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둘러싸고 일본과 갈등을 겪다가 2010년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금지해 엄청난 타격을 주기도 했다.
일본 정부도 거친 말 폭탄으로 맞대응하는 것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빌미를 제공한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이 일본 내 야당뿐만 아니라 관가에서도 부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정부는 안보나 경제 측면의 악영향이 큰 만큼 양국 관계의 급속한 악화는 피하고 싶은 게 본심"이라고 전했다.
한 당국자는 "양국 간 주고받기가 계속되면 여론이 악화하면서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이 신문에 전했다.
다카이치 총리도 지난 10일 국회에서 야당 의원의 발언 철회 요구는 거부하면서도 "기존 정부의 입장을 바꾸는 것은 아니며 반성할 점으로는 앞으로 특정 사례를 상정한 것을 명언하는 것은 삼갈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 일각에서는 외교적으로 무례한 발언을 한 쉐젠 총영사를 외교적 기피 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현 내각은 이 역시 조심스럽게 반응하고 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페르소나 논 그라타' 지정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중국 측에 양국 관계의 큰 방향성에 영향이 나오지 않도록 적절한 대응을 취하도록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명확한 답변은 피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자민당 정조회장은 중국의 방문 자제 권고 소식이 전해진 15일 취재진에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대화를 계속해 양국관계를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